일요일, H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다. 둘 다 늦잠을 잔 탓이다. 출근을 해야하는데. 그래도 자주 만날 시간이 없으니니.
_조금 늦을 것 같아.
추운 겨울이라 밖에서 기다리기가 어렵다,고 생각만 하고 머뭇거린다.
_먼저 들어가 있어. 대신 네가 먹고 싶은걸로 다-아 주문해.
다-아 주문하라고? 나는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한다. 일단 들어간다.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고, 직원을 불러 물어도 보고. 아직 아슬아슬하게 런치세트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런치메뉴를 선택하면 메뉴 정상가격에 수프와 커피 또는 녹차를 마실 수 있단다.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세트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테이블 끝에 다소곳이 놓인 포크와 나이프, 스푼 바구니. 이 가격에 음식을 파는 거라면 손님 앞에 살짝 놓아주어도 좋으련만. 덮개도 없는 바구니의 포크,나이브,스푼에 먼지가 앉았을지 알게 뭐람. 반짝이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소금통과 후추통이 감각적이긴하지만 이곳 서비스는 감성적이지 못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직업병이다. 그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샐러드가 나오더니 이어 수프가 나왔다. 내 것과 H의 것. 도착하지도 않은 H 앞에 수프그릇이 놓여있다. 직원을 부른다.
_저기, 아직 손님이 오지도 않았는데 수프를 내오다니요?
_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어요? 몰랐어요, 이따가 다시 내올게요.
몰랐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고 50평은 넘어보이는 매장에 고객은 나까지 세 테이블이었으며 게다가 나는 홀직원들이 대기하는 곳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아있다. 눈에 미치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었어도 용납될 수 없는 핑계다. 사과도 없다. 수프는 뜨거워야 맛있다. 코스에 따라 나오는 것은 양도 적어 금방 식는다. 음식마다 서빙되어야 하는 적정온도가 있건만. 홀짝홀짝, 스푼을 핥듯이 천천히 수프그릇을 비운다. 다행히 H가 도착했다. 그리고 새 수프가 나왔고, 메인메뉴들이 차례로 나온다. 다행이다. H가 뜨거운 수프를 먹을 수 있고, 도착하자마자 기다림 없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수프는 뜨거워야 맛있다.
20091122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